오만함에서 피어난 존재
오늘날 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고등 생명체 중 가장 많고, 가장 오래 살며, 이는 둘째라 하면 서러울 정도로 지구에서의 존재감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또한 오만하기로는 이 얼마나 뛰어난지, 인류는 자연을 정복할 기세로 많은 환경을 입맛 따라 규격 및 디자인하고, 수많은 동식물들을 제 발아래에 두며, 위로는 하늘을 뚫고 우주로 나아가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인간은 자신이 세운 규칙에 따라 세상을 다스리며, 마치 '불멸자(Immortal)'가 된 듯 보이기도 한다.
한 세대 만에 22년이나?
인류가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번성하게 된 데는 단연, 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의학의 발전이 대표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1970년을 기준으로 2024년까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62.3세에서 84.3세까지 22년이나 늘어난 추세다. 2022년 주춤한 데이터는 아마도 전 세계를 공포에 빠트린 '코로나19(COVID-19)'의 여파로 보인다.
그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현재 우리가 2024년 기준 남녀 통틀어 평균 84.3세의 '80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오만함, 그 역설적인 기질
그렇다면, 인류에게 있어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불로장생(不老長生)'이 아닐까 싶다.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인간의 오만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만함'은 인간을 더욱더 인간답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인간중심적 사고'를 통해 인류사 전반에 걸쳐 과학기술의 진보와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완성된다.
불사를 꿈 꾼 어느 왕의 이야기
'불사(不死)'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문명의 기원만큼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며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땅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는 우르크라는 도시국가가 있었다. 이 도시는 절반은 신이고, 다른 절반은 인간인 왕의 통치 하에 있었다.
왕은 지혜와 힘을 모두 갖춘 반면, 인간을 초월한 능력으로 인해 우월감에 빠져 백성들을 폭정으로 다스렸다. 그의 지도력에 불만을 품은 자는 나날이 많아졌고 이에 분노한 신은 왕을 제지하기 위해 독특한 인물을 창조해 인간 세상으로 보내게 된다.
그는 야생에서 동물들과 함께 자라 문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흘러 왕과 야만인은 조우하게 되었고 처음에는 다투었으나 이내 서로의 힘을 인정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들은 여러 모험을 떠나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도착한 삼나무 숲에서 괴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두사람은 힘을 합쳐 괴물을 무찌르게 되지만 이 괴물은 '삼나무 숲을 지키라'는 신의 명목 하에 있던 존재였기에 신의 분노를 사게 된다.
다시 시간이 흘러 많은 전투 속에서 끈끈한 우정을 쌓고 있던 두 사람에게 어느덧 비극이 찾아오게 된다. 신의 분노로 인해 야만인 친구는 죽을병에 걸리게 되고 왕은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때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부질없다는 것을 느낀 그는 불멸을 얻기 위한 여행에 나선다.
신들이 주는 험난하고 긴 시험 끝에 왕은 마침내 대홍수로부터 살아남은 유일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먼 옛날 신들이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보낸 대홍수 때 신들의 명령을 따르며 배를 만들어 홍수를 피한 인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신들의 시험을 통과하고 그 보상으로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그는 불멸의 비밀에 대해 알려주는 대신 왕에게 한 가지 시험을 제안했다. 절대 "7일 동안 잠에 들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왕은 이 시험에 응하지만 역시나 잠을 이겨내지 못해 실패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불로초'가 있는 곳에 대해 귀띔을 해주었는데 아주 깊은 바닷속에서만 자라는 탓에 바다를 건너야만 했다. 그의 조언으로 배를 만들고 또다시 많은 역경과 고난 끝에 결국 바다 건너 '신의 정원'에 도착한 왕은 뛸 듯이 기뻐하며 그토록 고대하던 불로초를 손에 얻게 된다.
그러나 신의 장난인지 귀환 도중 오랜 바깥생활로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왕은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고 그가 잠든 사이 불로초는 지나가던 뱀이 농담처럼 '꿀꺽' 먹어버리고 만다.
이를 통해 왕은 자신이 절대 불멸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삶은 그 자체로 불멸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왕은 그 길로 돌아가 자신의 왕국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인류와 자기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왕의 교훈
눈치챘겠지만 이 왕의 이름은 '길가메시(Gilgaméš)'이다. 이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학에서 유래한 서사시로, 인간 존재의 의미와 죽음, 그리고 불멸을 향한 열망 등의 깊은 철학적 주제를 다룬 깊이 있는 작품이다.
길가메시는 '반신반인(Demigod)'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불가피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오만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여러 사건을 겪으며 불사의 열망이 결국 아무 의미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죽어가는 존재들이 그러하듯 필멸자의 한계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며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우리에게 '왜 죽는가'가 아닌 '어떻게 죽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깊은 통찰을 안겨준다. 이는 5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가치'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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