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배사', 고민 중이라면?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식 일정이 달력 곳곳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누구라도 비슷한 고민을 품곤 할 것이다. '오늘은 또 누가 건배사를 맡을까?' 눈이 마주치면 순식간에 선창자가 되는 분위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 은근한 긴장감이 자리 잡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절한 한마디만 준비해 두면 이런 상황은 부담이 아니라 작은 무대가 된다. 짧지만 기억에 남는 문장 하나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열고, 팀원 사이에 온기를 불어넣는 순간이 된다.
오늘은 회식자리에서 쓸만한, 그리고 너무 튀지 않고 사랑받는 '건배사'에 대해 알아본다.
건배사란?

건배사는 술자리를 시작할 때 참여자들의 시선을 모아 분위기를 하나로 정리하는 의식적 발화다. 짧은 문장 속에 모임의 목적, 감사의 마음, 동료 간의 연대를 담아내는 구조를 갖추며, 우리내 조직 문화에서는 이를 집단 정서 조율 행동으로 간주한다.
이렇듯, 건배사는 구성원 간 심리적 거리감을 줄여 공동체적 흐름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직장에서 자주 쓰이는 건배사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모임의 취지를 압축한 핵심 문장. 둘째, 동료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하는 메시지. 셋째, 전체가 함께 외치는 합창이다.
이 세 요소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면 회식의 첫 장면이 부드럽게 열리고, 참석자 모두가 비슷한 감정선에서 출발할 수 있다.
또한, 건배사는 누가 선창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상사가 선창하면 공식적인 개시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팀원이 선창하면 친근함과 참여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건배사는 모임의 구조적 기조를 정렬하는 작은 의례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어떤 문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자리 전체의 공기와 흐름이 달라지기 때문에, 짧지만 전략적 의미를 지닌 언어적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건배사와 인류

건배사의 역사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한 시점과 맞닿아 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음료를 나누는 행위를 신뢰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고대 지중해 문화권에서는 잔을 함께 들어 올리는 동작이 '적대적 의심이 없다는 표시'로 이해되었다. 독극물의 위험이 존재하던 시대에는 서로의 잔을 기울여 조금씩 섞는 행위가 안전함을 확인하는 절차로 활용되었고, 이후 이 행위가 상징적 의례로 자리 잡았다.
그런가 하면, 중세 유럽에서는 축제나 연회를 준비할 때 '토스트(toast)'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다. 당시에는 술잔에 구운 빵 혹은 허브를 넣어 풍미를 더하는 관습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특정 인물이나 가치에 대한 찬사를 곁들이는 말하기 방식이 발전했다. 이러한 의식이 현대의 건배사 개념과 가장 가까운 형태였다.
일찍이 동양에서도 건배사의 원형이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술잔을 높이 들어 서로의 예의를 확인하는 관습이 있었고, 이를 '작배(酌杯)'로 표현했다.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악귀를 쫓는 기능을 한다는 민속적 해석도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삼국시대 무사 문화와 연회 의식에서 '잔을 들어 기원을 전하는 말하기'가 자주 기록되었다. 고려와 조선의 연회 기록에서도 임금 혹은 참석자가 덕담과 함께 술잔을 올리는 장면이 등장하며, 당시에는 국가 의례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근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직장 문화가 정착하면서 건배사는 점차 조직 구성원 간 유대감을 정리하는 절차로 기능했다. 산업화와 함께 회식 문화가 자리 잡았고, 축하·격려·결속을 표현하는 짧은 발화가 자연스럽게 체계화되었다.
최근에는 과도한 음주를 유도하는 표현이 배제되는 흐름이 확산되면서, 건배사는 보다 가벼운 긍정 메시지 중심의 언어적 의례로 진화하는 중이다.
회식 때 사랑받는 건배사 5원칙
청중 중심
건배사는 상황에 따라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무게감을 띤다. 참석자가 신입 사원 중심이면 분위기를 가볍게 여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팀장·임원 등 위계가 포함된 자리라면 절제된 어휘를 선택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외부 협력사가 함께한 자리라면 조직 내부의 은어를 배제하고, 의미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표현이 효과적이다. 건배사는 '누가 듣는가'를 먼저 고려하는 순간부터 품질이 달라진다.
즉,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말하는 수용자 지향 메시징으로 분류되며, 청중의 기대치를 파악했을 때 비로소 안정적인 반응이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짧고 명확하게
사람의 주의 지속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특히 회식 자리에서는 시선이 쉽게 분산되기 때문에 3~8초 내에 도달하는 건배사가 가장 안정적인 반응을 얻는다.
지루하게 늘어지는 건배사는 집중력을 저해하고 분위기를 경직시키는 요인이 된다. 짧은 문장 하나가 힘을 갖는 이유는 '핵심 메시지의 즉시성'에 있다. 말의 양이 아니라 말의 압축도가 분위기를 좌우한다.
긍정적 메시지
직장에서 환영받는 건배사는 대체로 격려, 감사, 건강, 협력 같은 긍정적 가치에 기반한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무리 없이 공유될 수 있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언어학에서 '정서적 공명(emotional resonance)'으로 설명되는 부분으로, 집단의 감정선이 유사할수록 공감도가 상승한다.
회식 자리 특성상 갈등이나 특정 성과만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부담이 될 수 있어, 공통된 가치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두는 편이 균형 잡힌 선택이다.
포용적 언어 사용
건배사에서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요소는 바로 '배제적 표현'이다. 특정 성별, 연령층, 개인적 신념을 언급하는 문장은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참가자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중립적 언어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지나치게 사적인 경험을 끌어오는 방식은 참석자 간 거리감을 만들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고로, 포용적 언어가 유지되면 건배사의 목적도 명확해진다.
중요한 건 타이밍
좋은 건배사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빛을 보기 어렵다. 회식 초반에는 분위기를 여는 문장, 성과 축하 자리에서는 감사와 격려를 중심에 둔 문장, 송별 자리에서는 그동안의 노고를 인정하는 문장이 자연스럽다.
말하기가 과도하게 앞서거나 늦으면 전체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모임의 목적과 감정 기류를 잠시 관찰한 후 적절한 순간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배사는 언어이지만 동시에 모임의 리듬을 여는 신호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금기와 주의사항
당연한 말이지만 농담으로라도 성적인 표현, 특정인을 조롱하는 표현, 정치 혹은 종교적 편향이 드러나는 말은 지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객응대나 보건업처럼 음주 문화가 민감한 직군에서는 '술 권유'형 건배사를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음으로, 각종 상황별 인기 있는 건배사들을 정리해 보았다.
새해 & 연말 건배사
채.근.담
- 채식과
- 근력운동을 하고
- 담배는 끊자!
신.대.방
- 신년에는
- 대박 맞고
- 방긋 웃자
너.뭐.돼?
- 너무 고생했고,
- 뭐가 걱정이고,
- 돼(되)겠지!
사.이.다
- 사랑합니다,
- 이 세상
- 다 바쳐서!
아.이.유
- 아름다운
- 이 세상,
- 유감없이 살다 가자!
상.한.가
- 상심 말고,
- 한탄 말고,
- 가슴 펴자!
아.저.씨
- 아자아자,
- 저무는 해는 잊고
- 씨(시)작하자!
오.바.마
- 오직
- 바라는 대로,
- 마음먹은 대로!
팀워크 & 단합 건배사
소.화.제
- 소통과
- 화합이
- 제일이다!
지.화.자
- 지금부터
- 화합하자,
- 자 한 잔!
박.보.검
- 박수를
- 보냅니다.
- 검(겁)나게 수고한 당신께!
오.징.어
- 오래도록
- 징그럽게
- 어울리자!
뚝.배.기
- 뚝심 있게,
- 배짱 있게,
- 기운차게!
이 멤버, 리멤버!
- 선창: 이 멤버!
- 후창: 리멤버!
승진, 성과 축하 건배사
마.당.발
- 마주 앉은
- 당신의
- 발전을 위하여!
진.달.래
- 진하고
- 달콤한
- 내일을 위해!
회식 마무리 건배사
초.가.집
- 초지일관
- 가자
- 집으로!
1.1.9
- 1가지 술로,
- 1차까지만 하고,
- 9시 전에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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