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지금 '김영란법'이 다시 주목받는가?
회사 동료의 결혼식에 갔다가 축의금 봉투를 건네는 그 짧은 순간,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다.
'이게 김영란법에 걸리진 않을까?'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이지만, 막상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 10만 원'이라는 문구는 익숙하지만, 정작 이 금액이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모호하게 남아 있다.
게다가, 최근 공공기관 접대비 사건과 교직원 선물 논란으로 다시금 김영란법이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판례와 실제 사례 중심으로 김영란법의 실질적 작동 방식을 정리해 본다.
그저 조문을 나열하는 대신, 우리가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축의금·식사·선물의 경계선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해석을 덧붙였다.
'김영란법'이란?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2016년 9월 28일 시행 이후,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투명성과 청렴의식을 끌어올린 대표적 법률이다.
제1조에 따르면, "이 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다음으로 이 법의 제정 취지에 대해 알아보자.
김영란법이 제정된 이유
김영란법의 출발점은 '관행의 끈'을 끊는 데 있다. 2010년대 초반, 공직사회와 언론계, 교육계에는 "식사 한 끼쯤은 예의", "명절 선물은 기본"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며 청탁과 이해충돌, 그리고 불투명한 거래로 이어지는 사건이 잇따랐다.
2012년 감사원 공직윤리 실태조사에서는 국민의 67%가 "공직자가 직무 관련자에게 식사 대접을 받는 것은 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응답했다. 국민이 느끼는 '작은 선물의 부담감'이 사회 전반의 불신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인물이 바로 김영란 전 대법관(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다. 그는 "청탁을 근절하려면, 청탁이 가능한 구조 자체를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위에서 이미 언급한 2011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초안을 마련했다.
OECD는 2017년 반부패 보고서에서 김영란법을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공공청렴 입법 중 하나"로 평가하며, 이후 한국의 국가청렴도(Transparency Index) 향상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김영란법은 '사람 사이의 정'을 없애려는 법이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투명함이 곧 신뢰'라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 바로 이 법의 제정 이유였다.
'공직자등'의 범위
여기에서 김영란법의 대상은 단순하게 '공무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2조 제2항에서 말하는 '공직자등'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 국가·지방자치단체 공무원
- 공공기관 임직원
- 언론사 종사자
- 사립학교 교원 및 학교법인 직원
여기에 더해 공직자의 배우자까지도 일부 조항에서 적용 대상이 되므로, '배우자 금품 수수'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국민권익위원회 청렴포털 통계에 따르면, 신고된 접수 건 중 약 32%가 '언론·교육기관 종사자' 관련 사례였다.
판례로 알아보기
식사 대접은 단순한 예의일까?
2019년 서울중앙지법은 한 시청 공무원이 지역 건설업자에게 2만 8천 원 상당의 식사를 대접받은 사건을 무혐의로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식사 가액이 법령 기준 이하이며, 명백한 직무 관련성이 없었다"라고 보았다.
반면, 같은 해 강원도의 모 공기업 직원이 직무 관련 업체와 2만 원대 식사를 반복적으로 한 경우에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즉, 금액보다 '관계의 지속성'과 '맥락적 직무 연관성'이 중요했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축의금은 예외인가, 금품인가?

'경조사비'는 법 제8조 제3항에서 일정 금액 한도 내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현재 시행령 기준으로는 10만 원 이하의 경조사비(축의금·조의금), 5만 원 이하의 선물, 3만 원 이하의 식사비가 원칙적 허용 범위다(2023년 9월 시행령 개정 기준).
하지만 실제 판례는 단순하지 않았다. 2020년 대전지법은 공공기관 직원이 거래업체 결혼식에 10만 원 축의금을 보낸 행위를 '직무 관련성 인정'으로 보고 경고 처분을 확정했다.
반면, '순수한 개인적 친분 관계'로 10만 원을 보낸 사립학교 교직원은 무혐의로 결론 났다. 결국 경계선은 직무 관련성의 존재 여부, 그리고 사적 친분의 객관적 증거(예: 학연·지연·동호회 관계 등)에 좌우된다.
기념 선물도 위법?
한 언론사 기자가 취재원으로부터 '감사 의미로' 받은 1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이 문제가 되었다. 법원은 "기념 목적이라도 금전적 가치가 명확한 선물은 청탁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즉, 금품의 '형태'가 아닌 경제적 가치가 판단 기준이라는 의미다. 반대로 기업 홍보용 소액 기념품(예: 5천 원 이하 사은품)은 통상적 홍보 활동으로 간주되어 무죄로 판단된 사례도 있었다.
직무 관련성의 기준

대법원의 2021도10142 판결문에 따르면, '직무 관련성'이란 "특정 금품 또는 행위가 공직자등의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럴 개연성이 인정되는 모든 관계를 의미한다."
이렇듯, 직무 연관 이상으로 직무의 공정한 수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판례에서 이 요소는 '직무 범위', '조직 내 영향력', '사적인 관계 유지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된다.
특히, "공직자가 향후 의사결정에 관여할 가능성이 있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실생활 사례
예를 들어, 기업 협력사 미팅 후 한쪽에서 커피를 결제했다면? 금액이 미미하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존재하면 위반 소지가 생긴다. 반면, 회의 중 회사 예산으로 구매한 다과는 '업무 필요비'로 인정되어 예외가 된다.
이처럼 김영란법은 단지 "얼마인가"보다 "왜, 어떤 관계에서 주어졌는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예외 규정과 합법적 허용 범위
김영란법은 사회 통념상 허용 가능한 행위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예외로 인정되는 경우에 속한다.
금품 허용 한도 정리
| 구 분 | 허용 한도 | 대표 예시 | 비 고 |
| 식사(음식물) | 1회 3만 원 이하 | 업무 중 식사, 회의 후 식사 등 | 2023년 시행령 기준 |
| 선물(금품) | 5만 원 이하 | 명절 선물, 기념품 등 | 농축수산물 선물은 최대 10만 원까지 가능 |
| 경조사비 | 10만 원 이하 | 결혼식 축의금, 부고 조의금 등 | 단, 직무 관련성이 없는 순수 사적 관계만 허용 |
동일 상대방에게 반복적으로 제공될 경우 '사회상규상 허용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외 규정으로 인정되는 경우
| 구 분 | 내 용 | 예 시 | 주의사항 |
| 공식행사 제공 | 기관 주관 공식행사에서 일률적으로 제공되는 식사·다과 | 시상식·세미나의 다과, 리셉션 뷔페 등 | 모든 참석자에게 동일하게 제공될 경우만 해당 |
| 명백한 사적 관계 | 친인척·가족 간 금품 제공 | 부모·형제 간 선물, 가족 경조사비 | 직무 관련성이 없음을 입증 가능해야 함 |
| 통상적 수준의 선물 | 관례적 수준의 기념품·홍보물 | 기업 홍보용 소액 기념품, 명함 케이스 등 | 경제적 가치가 경미한 경우에만 인정 |
| 정당한 사교·의례 행위 |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교류 | 동호회, 학연 모임 등에서의 식사 | 직무 관련성이 없어야 함 |
| 공익적 목적의 금품 |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기부나 후원 | 장학금, 공공 캠페인 기부금 | 대가성이 없어야 하며 서류 증빙 필요 |
처벌 수위와 신고 절차

청탁금지법 위반 시 금품 가액이 100만 원 이하이면 과태료, 초과 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예컨대, 3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은 경우 최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신고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포털을 통해 가능하며, 최근에는 익명 신고 보호 시스템이 강화되었다. 2024년 기준, 위반 신고 건수는 약 1,200건, 그중 실제 처벌로 이어진 비율은 약 28%였다(출처: 국민권익위원회 연례보고서, 2024).
마치며,
김영란법은 인간관계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법이 아니라, 투명한 신뢰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축의금 봉투를 건네기 전, 식사 자리에 앉기 전, 선물을 고르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직무 관련성'을 떠올린다면, 그 사회는 이미 조금 더 투명해진 것이다.
청렴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신뢰의 기반을 세우는 과정이다. 즉, '합리적 거리두기'가 청렴의 시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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