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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피로 얼룩진 황금의 땅(+콩키스타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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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15~17세기를 주름잡던 정복자들 '콩키스타도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그들의 역사와 의미, 어원 등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다.

 

 

 


 

 

 찬란한 '황금도시'의 전설

 

© Image by  Ivo Zahradníček  from  Pixabay

 

  "엘도라도는 황금으로 덮인 왕이 다스리는 도시로, 왕은 태양신에게 금을 바치기 위해 몸을 온통 황금으로 덮었다." 아즈텍과 잉카 제국은 마치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대제국이었으며, 이 두 문명은 고대 아메리카의 중심부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금은 단순한 자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졌고, 제국의 전통과 신앙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 Image by  Jonathan Ramos  from  Pixabay

 

  아즈텍은 14세기 후반, '메히코호' (오늘날의 멕시코시티) 지역에 정착한 '테노치티틀란'을 기원으로 한다. 다신교 사회였던 아즈텍 왕국은 그 중에서도 '태양신(톤아티우)'을 가장 중요한 신으로 숭배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아즈텍인들은 태양신의 명령에 따라 호수 위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한다. 황제는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으며, 아즈텍 사회에서 중요한 종교적 의례로 금을 사용하여 태양신에게 바치는 제물을 준비했다.

 

  금은 신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믿음은 아즈텍 문명에서 잘 알려진 '인신공양' 의식으로 이어졌다. 이 의식은 신들의 분노를 달래고 태양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의례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 Image by  jjnanni  from  Pixabay

 

  이러한 야만적인 모습과는 달리 아즈텍은 천문학에 밝았는데 이들에게 있어 천문학은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생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천체의 움직임을 통해 신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믿었고 달력을 통해 일상생활을 조정하기도 했다. 아즈텍인들의 천문학적 지식은 오늘날까지도 놀라운 정확성을 자랑하기로 유명하며 천문학과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한편 잉카는 15세기 초, '쿠스코'를 중심으로 확장하기 시작한 '파차쿠텍'을 기원으로 한다. 잉카 제국은 철저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었으며, 황제는 '태양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황금은 신성한 자원으로 간주되었고, 잉카인들은 신전과 궁전을 황금으로 장식했으며 황금을 통해 그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 Image by  LoggaWiggler  from  Pixabay

 

  잉카는 뛰어난 석조 건축과 농업 기술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마추픽추'는 잉카인의 '과학적 정밀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유적지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아즈텍과 잉카 제국 모두 금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그들의 종교와 문화, 경제의 중심에 두고 중요하게 여겼다. 이러한 황금에 대한 탐욕은 바다 건너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왕국에도 큰 매력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콩키스타도르, 황금의 땅을 향해

 

© Wikimedia, AlejandroLinaresGarcia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는 스페인어로 '정복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콩키스타'에서 유래하며, '재정복(reconquest)'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주로 15세기부터 17세기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스페인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탐험가, 군인 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원주민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문화를 억압해 가며 그들만의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어갔다.

 

  이 단어의 뿌리를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스페인어 '레콩키스타(reconquista)'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레콩키스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전쟁을 의미한다. 따라서 콩키스타도르란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전사들이자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해 나선 이들을 뜻한다.

 

 

역사적 배경

 

© DEA/G. Dagli Orti/Getty Images

 

  콩키스타도르의 역사는 스페인 제국의 팽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후, 스페인은 신대륙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을,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잉카 제국을 정복하면서 콩키스타도르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개 귀족 출신의 젊은 남성들로, 황금 대륙과 금은보화를 찾아 스페인을 떠났다.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그들은 스페인의 첨단 무기와 전술, 그리고 유럽에서 쌓은 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그 당시 콩키스타도르들이 중남미에서 얼마나 강력한 존재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콩키스타도르의 강점

 

  오늘날 밝혀진 콩키스타도르의 강점은 아래와 같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고도로 발전된 무기와 뛰어난 전술

 

© La Conquista del Colorado by Augusto Ferrer-Dalmau, via Arizona Public Media

 

  당대 스페인에서는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총기 '머스킷(Musket)'을 사용했으며 그 밖에도 '검(espada)'이나 '도끼(hacha)' 등 광범위한 철제 무기와 '철갑'을 두른 금속 갑옷을 사용해 뛰어난 전투력을 보유했다. 뿐만 아니라, 기병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으며 빠르고 유연한 기동력은 전술을 펼치는데 유용했다.

 

  원주민들은 주로 돌, 나무, 가죽, 흑요석, 청동 등으로 이루어진 원시적인 장비(석궁, 창, 가죽옷)로 맞섰기에 화기와 총기 등 고도로 발전된 낯선 무기를 앞세운 콩키스타도르의 등장은 압도적인 공포감을 심어주기엔 제격이었다.

 

  전술적 접근법으로만 봐도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정밀하고 협력적인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전투에서 일시적인 유리함을 얻기 위해 집단으로 싸운 반면, 훈련된 군사들과 조직적인 전술로 이루어진 콩키스타도르들은 정밀한 전략과 집중된 공격전술을 사용했다.

 

© https://www.thewhitbyguide.co.uk/spanish-galleon-to-visit-whitby/

 

 

  한편, 해군도 정복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해상 교통망을 통해 '무기, 보급품, 지원군'의 삼박자를 맞췄으며 함대를 이용해 대륙으로 이동하며 원주민들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 새로운 지역을 정복할 수 있었다.

 

 

 전염병의 매개체

 

  의도치 않았던 손님들은 유럽 전역의 여러 전염병까지 안고 왔다. 특히, '천연두'는 원주민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는데 당시 아메리카의 많은 원주민들은 유럽에서 발생한 병들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질병에 노출된 원주민들에게 전염병은 치명적이었으며 이는 곧 원주민들의 인구 감소율을 크게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원주민의 분열과 협조

 

 

 

"Divide and rule, a sound motto. Unite and lead, a better one.

분열시켜 지배하라, 좋은 구호다. 단결시켜 이끌어라, 더 나은 구호다."

 

- Johann Wolfgang von Goethe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로써 원주민 사회는 내부 갈등을 겪게 된다.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원주민들이 사망하게 되면서 노동력에 필요한 일손이 부족해지고 대규모 농업과 자원수탈도 어려워졌다. 곧, 그들의 전통적인 사회 구조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콩키스타도르들은 이처럼 손쉽게 정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정복하는 과정에 있어 결정적이었던 전술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분열 전략'이었다. 카스티야 출신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 제국의 정복 과정 중 아즈텍으로부터 억압받던 토토나크 부족과 손을 잡아 그들을 아즈텍을 향한 공격에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정복하려는 제국의 적대 세력과 동맹을 맺는 등 원주민 간의 내분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다.

 

 

 신의 뜻대로

 

  콩키스타도르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종교적 명분'이란 강력한 군사력과 결합해 정복 활동을 더욱더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Conquista de México por Cortés” / Wikimedia Commons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가톨릭 국가로서, 자신들의 정복 활동에 대해 '신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러한 종교적 동기를 말미암아, 콩키스타도르들의 행동양식에도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는 원주민들과의 관계에서도 전략적 장점으로서 작용했다.

  이 의도치 않았던 손님들은 기독교 전파 및 이교도 구원의 사명을 안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가톨릭 군주'로도 유명한 스페인의 부부군주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는 콩키스타도르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원주민들의 영혼을 구원하라" 명령했는데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인도하는 것이 곧 자신들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교황의 전폭적인 지지도 한몫했다. 1493년,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아메리카 대륙의 모든 미개한 지역을 스페인 왕실에 부여하며, 원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교황 칙서를 발행하였다. 이러한 교황의 지지는 콩키스타도르들이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정복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 Titia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나아가 '기독교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신앙과 문화를 파괴하며 다방면으로 침탈을 촉진하는 데 열중했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아즈텍을 정복하는 과정 중 아즈텍의 다신교적 신들을 두고 악마로 간주하기도 했다.

  콩키스타도르들은 전투에 참여하기 전 기도를 통해 신의 보호를 기원했고, 승리는 기적으로 해석하는 등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또한, 원주민들을 기독교화하기 위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영혼의 구원과 문명의 혜택을 제공한다"라고 주장했는데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던 원주민들은 그렇게 유럽의 농업 기술과 의학적 지식을 접하게 되었다.

 

 

 마치며

 

 

  콩키스타도르는 단순히 영토 정복에만 그치지 않았다. 현시대적 관점에서 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고 아메리카 대륙전반의 근본적인 사회 및 경제 구조를 바꿔 놓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중남미에서 스페인어와 가톨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분명 이 때문이리라. 새로운 자원과 식민지를 통해 스페인의 경제를 크게 성장시킨 점, 더 나아가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과연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았는가'라는 의문점을 제기해 본다. 그들이 남긴 상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전염병과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었고, 그 결과 그들의 고유했던 문화와 역사도 함께 사라졌다.

 

  이러한 점에서 콩키스타도르는 단순한 역사의 영웅들이 아닌, 잔혹한 침략자로도 평가받고 있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곧,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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